터키는 단순 관광뿐만이 아니라 종교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 나라입니다. 특히 크리스찬들에게는 지난 편에서 다룬 성소피아 대성당 외에도 성서에 등장하는 각 종 요소의 흔적이 담긴 지역이 곳곳에 있는 나라가 바로 터키입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만 추려‘성지순례 패키지’ 로 꾸려 여행상품이 될 수 있는 나라이죠. (실제로 검색해보니 성지순례로 다녀오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패키지 상품도 다양하구요.) 유사원 역시 여행 셋째 날 성경의 에베소서의 무대가 되는 에게해 최대 유적지 에페소로 향하게 됩니다.
에페소 유적의 입구를 당당히 장식하고 있는 한글 매뉴얼!!
사실 에페소의 유적의 상당 부분은 무너져 내린 상태였기에 큰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학창 시절 다니던 수학여행에서 지나치던 비슷비슷한 유적지를 다니는 느낌이랄까요. 인류가 쌓아 올린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지고 이내 곧 스러지는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봤을, 자연의 도도함이 유독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페르시아, 알렉산더, 로마 제국이 거쳐간 땅 위의 폐허
그 폐허를 두르고 있는 산과 바다 안에서 대비되는 인류 역사의 명암
언뜻 보기에는 황량하기 이를데 없는 에페소의 유적들이지만, 이모저모를 둘러보면 사실 볼거리는 상당합니다. 로마시대 건축물들의 잔해 속에서는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세식 화장실, 모자이크로 꾸며진 화려한 도로 등을 비롯한 세세한 유적을 비롯하여, 셀시우스 도서관과 같은 역사적으로 절리 알려진 건축물도 그 형태를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의 모습, 각 국의 관광객을 이끄는 가이드들의 설명이나 제스쳐를 비교하는 것도 나름의 쏠쏠한 재미를 주었습니다.
에페소 유적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대원형극장 입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뜨거운 열기를 이끌어내는 구조의 대학의 원형 극장의 모태가 되는 로마식 원형극장의 최고봉이 바로 이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대 도시의 한 중앙에 자리잡은 이 거대한 극장은 약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각 종 공연이 열렸음은 물론, 성경의 주요 인물인 사도 바울 역시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에페소 대원형극장
해안으로부터 이는 바람에 음향을 싣는 구조를 가진 이 탁월한 극장은 지금도 그 기능이 여실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이 고대의 극장에서 유사원의 일행은 가이드의 설득(?)으로 국민가요 ‘사랑으로’ 를 합창하는 재미난 광경을 연출하였습니다. 과거 합창단 활동을 하며 한가락 뽑았던 유사원은 단연 큰 활약을 하였고 많은 외국인들의 박수를 받았답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은 YouTube에서 ‘터키 사랑으로’ 를 검색해주세요~^^;)
에페소 유적지를 나서는 길가에 자리잡은 반가운 한국 식당!!
패키지 여행에서 하루에 하나쯤은 끼어있는 ‘쇼핑’ 일정. 마냥 불편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에페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방문한 쉬린제 마을은, 조금은 지쳐가던 몸과 마음에 아늑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평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이주에서 형성했다는 쉬린제 마을은 야트막한 언덕에서 풍겨오는 정취에 그리스식 건축물들이 옹기종기 어우러져 그야말로 유럽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었습니다.
동화책 삽화의 한 장면과 같은 쉬린제 마을,,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
그런 기분 속에서 특산품인 과일 와인 시음을 하니 그 달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결국 계획에 없던 와인은 두 병을 구입하여, 돌아오는 짐을 쌀 때 애를 꽤나 먹었습니다. 이 즈음에서 한 가지 쇼핑 팁은, 심지어 이렇게 버젓한 상점에서도 에누리가 가능하니, 터키 여행에는 아주머니 근성을 꼭 구비해서 다니시길 바랍니다.
쉬린제 마을의 와인 상점, 고풍스러운 건물 내외부 장식에 반하여 저렴한 와인 가격이 매력적이다
이번 여행에서 유사원 스스로 가장 잘 했다고 여기는 것은, 정규 일정을 마친 후 피곤함을 무릅쓰고 자유여행의 기분으로 구석구석 동네를 누빈 일입니다. 마침 해지기전에 일정이 끝난 터라, 호텔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찾아 무작정 뛰쳐나간 것이죠. 그냥 적당한 바다가 있겠거니 한 그곳에는 보물 같은 휴양지가 있었습니다!
쿠사다시 마을의 이발소와 헬스장, 조금은 촌스러운 분위기이다.
물론 유사원이 사전에 부지런히 공부를 했다면 (혹은 조금은 유식했다면,,) 쿠사다시가 에게해의 유명한 휴양지라는 것을 알고 일부러라도 찾아갔을 겁니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발길 따라 간 그곳이 너무도 멋진 장소였다는 것 역시 그 이상의 운치와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초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가 아닐까요? (아하하,, 손발이 오글,,^^)
쿠사다시 해안의 정경
에게해에 드리운 노을
잘 닦인 휴양지의 거리와 곳곳의 카페들을 둘러보고 나서, 유사원은 석양이 가장 잘 보이는 펍을찾아가 혼자만의 로맨스를 즐기고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행자 티를 물씬 뿜으며 메뉴를 두리번거리다 마주친 대머리 아저씨의 눈인사,, 가죽점퍼에 타락한 자비에르 박사의 인상을 지닌 그가 말을 겁니다.
‘어디서 왔는고?’ ‘으으응,,? 나 한국에서 왔는데?’ ‘오 안뇽하쎄요! 형제여~’
넉살 좋은 유사원은 이 험상궂은 형씨와 어느새 두런두런 몇 마디를 나누게 되고, 어느새 하나 둘씩 모여든 그의 벗들과 함께 맥주를 나누면서 하나가 되어갑니다. 거친 사내들의 대화에 빠질 수 없는 ‘축구 이야기, 여자 이야기, 전쟁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가족 이야기, 연애 이야기, 직장 이야기로 번져나가며 수다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가죽 의류 공장에서 일한다는 대머리 형씨 (알고 보니 유사원보다 어립니다,,터키인은 외모에 -10살을 하면 얼추 맞는다 가이드의 말이 틀리지 않나 봅니다,,) 는 유사원이 들이킨 맥주들을 시원하게 쏘며, 페이스북 주소를 건냅니다. 터키의 험상궂은 형제들과 함께한 시간은 최고의 기억으로 유사원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Oh~ My brother!! 터키의 호탕한 친구들과 함께한 에페스의 시원함이란!!
호텔로 돌아온 유사원은 나른한 몸을 뉘이고 로비에서 뽑아온 광고지를 조물락 댑니다. 하맘 (Hamam) 이라고 불리는 터키 고유의 목욕 문화를 호텔 지하에서 서비스한다는 내용의 광고입니다. 과거 변질된 불법적인 콘텐츠로 국내에 도입된 ‘터키탕’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터키 전통 목욕 서비스이지요.
터키에서 본 하맘 [Hamam] 광고는 보통 이런 그림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에서처럼 얇은 비닐봉투와 같은 커다란 도구로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내어 목욕을 시켜줍니다.
빡빡한 일정에 지친 몸상태는 물론, 각 종 호기심(?)으로 가득 찬 정신 상태를 고려한 유사원은 약간의 주저함을 거쳐 결국 호텔 지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수더분한 카운터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탈의실에서 옷장을 연 유사원의 눈앞에는 정말 애매한 크기의 타월이 한 장 놓여있더군요. 고민에 빠진 유사원은 카운터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지만 영어가 서툰 카운터 아주머니는 ‘돈 워리~’ 만을 연발했고, 결국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속옷까지 탈의한 후 아랫도리에 타월만 두르고 당당하게 입장 하였습니다. 그러나!
왼쪽에 걸린 건 유사원의 옷. 옷장 안에는 정말 저 타월만 달랑 있었다,,유사원의 잘못이 아니다.
터키의 전통 목욕은 분명 돈이 아깝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피로도 풀리고 거품을 내서 목욕을 하는 방식도 색다른 구석이 있었습니다. 다만, 타월 사이즈는 분명 유사원에게 적절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차례 풀려버리는 타월 매듭의 향연 속에서 울리는 수영복 차림의 관리사의 울부짖음이 여러 번 귓가를 때렸습니다. ‘Oh No~ Oh No~’ , 유사원은 의도치 않게 어글리 코리안이 되어버렸네요. 방으로 돌아와 알아보니 속옷을 탈의 하는 게 맞긴 한데 보통 수영복을 입고 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갑작스러운 여행이지만, 어느 정도의 사전 공부는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터키 여행기가 어느덧 중반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짧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여행기를 이렇게 세세하게 늘어놓는 것은, 어쩌면 인상 깊었던 여행의 여운을 조금이나마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하는 유사원 개인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읽어주시는 누군가가 계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부풀리며 남은 이야기를 보다 정성껏 실어가도록 하겠으니, 부디 재미난 간접 체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