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는 독특하게 ‘냄새’를 눈으로 본다는 설정으로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부터 흥미를 끌었는데요. 보이지 않는 냄새를 어떻게 눈으로 본다는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냈었습니다. 실제 냄새를 보는 소녀로 등장하는 오초림은 다양한 냄새를 모양으로 식별하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신기해서인지 아니면 드라마가 재미있어서인지 드라마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냄새를 눈으로 보는 게 가능한 것일까요? 만약 정말이라면 먼 발치에서 싫어하는 냄새가 눈에 보이면, 맡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요. 냄새에 대한 유쾌한 상상, 지금부터 함께 해볼까요?
"냄새를 눈으로 본다?" 상상만해도 즐거운데요, 하지만 실제 냄새는 사람의 육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냄새 분자는 대개 nm(나노미터: 1nm는 10억분의 1m) 수준인데요. 분자현미경을 통해서만 보인다고 하니, 냄새를 보는 것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실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는 10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라고 해요. 따라서 드라마 속 오초림의 초능력은 우리에게 생길 일은 절대 없겠죠?
그렇다면 우리는 냄새를 어떻게 구별해 내는 것일까요? 사람의 코 안에는 숨을 쉴 때 들어오는 공기 중의 분자를 잡아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는 감각기관이 있다고 해요. 감각기관에 자극이 들어오면 뇌에 전달되는데요, 어떻게 조합돼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코 안에는 작은 섬모들로 이뤄져 있는 후각 신경들이 있는데, 너무 작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코 안쪽을 따라 2평방센티미터 안에 약 5백만 개의 수용체가 있다고 해요. 이 섬모는 뇌로 바로 이어지는 신경의 말단에 위치하고 있어, 냄새가 들어오면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수용체의 표면에 있는 빈 공간으로 이동해 우리가 냄새로 인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향을 구분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화학자들’인데요. 오랜 연구를 통해 섬모의 수용기에 몇 가지 기본 형태가 있고, 냄새와 물질의 화학 조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기본적인 향을 ‘플로랄(꽃)향’, ‘그린(풀)향’, ‘동물향’, ‘향신료 나무향’으로 나누고, 휘발성이 강한 ‘시향’부터 중간향, 기초향으로 구분했는데요. 호박향이 나게 하려면 어떤 물질을 조합해야 하는지를 연구해 새로운 향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죠. 바로 이런 방식으로 ‘향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향수(perfume)는 라틴어로 ‘연기를 통하여’라는 뜻을 지닌 ‘페르 푸메(per fume)’에서 왔는데요. 과거 신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향료를 피웠던 관습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930년대 ‘그린향’이라 불리는 향이 화학자에 의해 발견됐는데요, 잎 알코올(leaf alcohol)이라 불리는 물질로 정확한 화학명은 ‘시스-3-헥센올(cis-3-hexenol)'입니다. 1940년 대에 바로 이 향으로 크리스천 디올이 향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 (좌)시스-3-헥센올 분자구조, (우)트라이니트로톨루엔 분자구조(출처: 위키피디아)
향수원료로 각광받고 있는 원료 중 하나가 바로 ‘사향’인데요, 1888년 독일 화학자 아돌프 바우어(Adolf Baur)가 '트라이니트로톨루엔(Trinitrotoluene, TNT)'의 제 3부틸(tertiary-butyl) 유도체에서 사향의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그의 이름을 따서 이 화학물질은 ‘무스크 바우어(Musk Baur)’라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1920년대 들어서 나일론 창시자인 월리스 캐러더스가 '폴리에스테르(polyesters)'에 열을 가하면 사향과 비슷한 향이 난다는 걸 발견했는데요. 이렇게 해서 인공사향을 만들게 됐는데, 가격도 수천 배 싸고 천연사향과 매우 흡사해 아직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답니다.
좋은 향을 맡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숲 속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게 되지요. 향기는 단지 기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코를 통해 뇌에 전달돼 호르몬 분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답니다. 이 호르몬 조절을 통해 몸 속의 여러 증상들을 악화시키거나 완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향기로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아로마테라피는 허브에서 추출한 에센셜 오일을 이용하는 것으로, 베르가못과 자스민은 우울증에 도움을 주고, 라벤더는 편안함을 줘 불안증세를 완화해준다고 합니다. 또한 라임과 레몬글라스는 식욕증진에, 진저와 로즈메리는 통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향으로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는 부작용이 적다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도, 좋은 향을 맡으면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끼는데요. 이는 단지 기분이 아니라 실제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우리 몸에 안 좋은 물질을 내보내고 있는 것이랍니다.
'감성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향기'는 기업의 마케팅에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냄새를 맡는 순간 저장되어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를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하는데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어느 날 홍차와 마들렌을 먹다가 갑자기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마들렌의 향기를 기억해내고 그 추억을 계기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썼는데, 바로 이 일화에서 유래됐습니다.
중고차에 새 차 방향제 냄새를 뿌리면 새 차를 탔을 때 기억을 불러일으켜 중고차를 새 차처럼 느끼게 해 판매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데요.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는 유아용품 매장에 베이비파우더 향을, 속옷 매장에는 라일락 향을, 수영복 매장에는 코코넛 향을 뿌린다고 합니다. 여기에 최근 미국 기업들은 자사 특유의 향기를 다른 기업이 흉내내지 못하도록 상표등록을 하고 있다는데요.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 와이어리스'는 매장에서 나는 '사향(flowery musk)'에 관한 상표권을, 현악기 우쿠렐레를 만드는 'SHS 인터내셔널'은 악기가 풍기는 '피나 콜라다(펌주에 파인애플 주스와 코코넛을 넣은 칵테일)' 향기에 관한 상표권을 받았습니다.
지금 머리가 아프고 집중이 안 되신다고요? 그렇다면 라벤더향을 맡아보세요. 시험기간에는 로즈메리향을 맡으면 학습능력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다이어트를 하고 계시다면 풋사과향을 맡으세요. 식욕이 떨어져 체중조절에 도움이 되실 거에요. 냄새가 우리의 몸에 미치는 영향, 어떠신가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우리의 머리와 몸은 향기를 오랫동안 기억한다고 하니, 너무 서운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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