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이제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선물은 준비하셨나요?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어 한달 내내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요. 반짝이는 트리와 캐럴은 그 기분을 더욱 부추기지요. 여러분은 크리스마스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르시나요? 많은 게 떠오르시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스크루지'로 익숙한 찰스 디킨스 원작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소개드릴게요.
혹시 영화 ‘트로이(Troy, 2009)’를 보셨는지요. ‘영화로 고전읽기(1) – 오딧세이아’ 편에서도 서두에 언급되었는데요.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가 아킬레스의 장례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 영화 트로이 中 에서 '아킬레스'(左)와 '파리스'(右) (출처: 네이버 영화)
호머(Homer)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의 양대 주인공 중 하나인 아킬레스. 불사신일 것만 같았던 그의 영웅적인 인생이 트로이의 나약한 왕자 파리스(Paris)의 화살 한 방으로 막을 내립니다. 장례식장에서 아킬레스의 시신이 화장(火葬)을 위해 제단 위에 누워있고, 그의 두 눈에 황금색 주화 두 개가 올려집니다.
▲ '카론'(上)과 '(고대 장례식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메두사가 새겨진 은화 (출처:위키피디아)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스틱스(Styx) 강(江)이 흐르고, '카론(Charon)'이라는 뱃사공이 죽은 영혼을 저승으로 배에 태워 보내줬다고 합니다. 이 때 뱃삯으로 1 오볼(obol, 고대 그리스 은화)를 받았다고 해요.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은화를 망자의 입 속에 넣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눈 위에 동전 두 개를 올려놓는 풍습은 실은 고대 유대의 풍습이라는군요.
▲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 2009)’
(출처: 네이버 영화)
이번에 다루는 찰스 디킨스 원작인 로버트 저맥키스 감독의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 2009)’에도 영화 ‘트로이’에서 본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는 주인공 ‘스크루지(Scrooge)’의 동업자였던 ‘말리(Marley)’의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죽은 말리의 눈에 동전 두 개가 올려있는 장면입니다.
▲ 말리의 유령(左)과 스크루지(右)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2009)’ 중에서) (출처: 네이버 영화)
스크루지는 말리의 사망확인서에 서명하고, 장례 비용을 치르는데, 달랑 동전 한 잎을 장례업자에게 건네죠. 황당한 표정이 역력한 장례업자. 스크루지가 동전 한 잎을 더 건넵니다. 이제 관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잠깐!”을 외치는 스크루지. 말리의 두 눈 위에 놓여있던 동전 두 개를 꺼내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정말 스크루지답고, 해도 너무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한 번 이상은 읽어 보셨을 겁니다. 저도 물론 어린 시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유치원 다닐 때, 슬라이드 형태의 구연 동화로 처음 접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 동화책, 다양한 형태의 영화, 만화영화로도 부지기수로 봤습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2009)’ 中 (출처: 네이버 영화)
지난 2009년에 개봉된 3D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 캐럴’은 과연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오히려 3D 애니메이션이라는 보다 풍부한 표현 기법을 기반으로 분장한 배우들의 모습으로는 한계가 있을 법한 주요 캐릭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죠.
이 영화에서 주인공 스크루지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짐 캐리(Jim Carry)'는 리얼한 영국 액센트로 ‘스크루지’가 있었다면 바로 이런 목소리였을 것이다라고 느낄 정도로 열연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뒤늦게야 안 사실인데요, 짐 캐리가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 역할까지 맡았다는 겁니다. 1인 4역을 한 셈이죠.
또한, 스크루지의 사무실 점원 밥 크라칫(Bob Cratchit)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Gary Oldman)'도 자신과 아들 팀(Tim), 그리고 죽은 말리의 목소리까지 1인 3인 역을 했죠. 워낙 연기력이 뛰어난 이들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다양한 ‘크리스마스 캐럴’ 동화들 (출처: 교보문고)
이 영화는 원작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야기의 구조가 워낙 간단하고 명확할 뿐 아니라 널리 알려져 있어서, 변주의 여지가 없어 보이긴 합니다. 이런 것이죠. 구두쇠로 지역사회에 악명 높은 스크루지가 동업자 말리가 죽은 지 딱 7년째 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에서 말리의 유령과 만납니다.
말리는 앞으로 3일 동안 세 유령이 나타날 것임을 예고하고 사라지죠. 이윽고, 과거의 크리스마스, 현재의 크리스마스,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나타나고, 스크루지는 깨달은 바가 있어 개과천선(改過遷善)한다는 극히 단순한 구조입니다. 극명한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다루기에 동화로 재창작되어 널리 읽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화로만 읽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의 원작 소설을 처음 접했는데요. 찰스 디킨스가 동화로서 이 작품을 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고 하면 단순히 “지독한 구두쇠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속에는 당시의 사회상을 ‘스크루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찰스 디킨스 著, 마이클 패트릭 히언 註, 현대문학, 2011)’에 의하면 디킨스가 이 책을 출판한 1843년 당시는 예로부터 이어온 크리스마스 전통이 쇠퇴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영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배를 기도와 묵상 속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하네요. 특히, 당시 산업혁명의 시대에 크리스마스 명절의 소박한 즐거움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공장의 사장들은 크리스마스 때 공장의 문을 닫지도 않았다고 해요.
실제로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도 자신의 회사 직원인 ‘밥 크라쳇’이 크리스마스 날 하루만큼은 쉬게 해달라고 사정하자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단, 크리스마스 다음 날 엄청 일찍 출근한다는 전제로 말이죠.
한편, 찰스 디킨스는 이 작품 집필 직전 당시 작가 생활 중 처음으로 인기와 수입이 현저히 위축되는 경제적 압박과 함께 작가로서의 예술적인 개인적인 압박에 짓눌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적 개인적 배경에서 세계적인 고전 ‘크리스마스 캐럴’이 탄생한 것입니다.
▲ 1842년 당시의 찰스 디킨스(左), 말년의 찰스 디킨스(右) (출처: 위키피디아)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대목이 나오는데요. 스크루지의 사무실에 들어 온 자선 모금 활동가들을 스크루지가 매몰차게 내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감옥이나 강제 노역소에 보내라. 그 곳에 가기 싫어서 죽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냥 죽으면 된다. 어차피 인구가 넘쳐나니까.”
정말 너무 매정함을 넘어서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개념은 스크루지가 유별난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당시에 어느 정도 통용되었던 생각이었나 봅니다.
▲ 1933년 초상화 속 멜서스 (출처: 위키피디아)
특히, 비슷한 시기의 저명한 인구 학자인 멜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의 이론에 따르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 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인간의 빈곤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라는 것과, 더 나아가 이에 따른 빈곤층을 ‘잉여 인구’라고 하는 극한 표현까지 불사했습니다. 특히, 빈곤층의 인구를 복지 예산 축소를 통해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답니다. 스크루지의 생각과 그리 멀어 보이지 않네요. 멜서스는 이런 이유로 당대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죠.
이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단순한 권선징악 차원을 넘어서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적 병폐를 자신의 어린 시절 불우했던 성장 과정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여 제대로 빚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연극, 뮤지컬, 영화, 만화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창작되어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연례 행사처럼 온 세계인들에게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 ‘크리스마스 캐럴’ 초판(1843) (출처: 위키피디아)
여기서 잠깐!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토리와 스크루지와 같은 악명 높은 캐릭터를 어떻게 떠올렸을까요?
딩글리 델(Dingley Dell)이란 사람이 쓴 겨울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서 ‘교회 묘지기를 훔쳐간 도깨비 이야기’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성질 나쁜 묘지지기 ‘가브리엘 그럽(Gabriel Grub)’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할 일이 없어 무덤을 판 후 독주를 한 병 마셨습니다.
이 때 일군의 도깨비들이 그를 일깨우기 위해 나타나고, 마법의 동굴로 그를 데려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내는지 보여주죠. 이를 본 그럽이 깨달음을 얻는다는 스토리입니다. 어떻습니까? ‘크리스마스 캐럴’과 매우 비슷하지 않나요? 디킨스는 이 이야기에서 스토리를 착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핵심 캐릭터 ‘스크루지(Scrooge)’의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요? 그의 일기에 의하면, 디킨스가 1841년 어느 날 에딘버러(Edinburgh)에 있는 캐논게이트 커크야드(Canongate Kirkyard)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묘지의 안내판(grave marker)에 ‘Ebenezer Lennox Scroggie’라는 사람의 묘지의 위치와 함께 ‘Meal Man’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을 디킨스는 “Mean Man(비열한 사람)”으로 잘못 읽은 것이죠. 실제로 디킨스는 약한 난독증(難讀症)이 있었다는 군요. 그래서 그 이름을 거의 그대로 캐릭터 이름으로 가져옵니다.(이야기 속의 스크루지의 이름은 ‘Ebenezer Scrooge’입니다.)
이 Scroggie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로서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친척이라는군요. 그는 당시 유명한 주류 공급업자이자 곡물업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물업자의 의미로 ‘Meal(곡물) Man’이라고 묘지 안내판에 표기한 것이죠.
한편, ‘스크루지(Scrooge)’와 비슷한 영어 단어 ‘scrouge’가 ‘(몰아 넣고) 쥐어짜다’는 뜻입니다. 이름 자체 만으로도 스크루지의 ‘구두쇠’ 이미지가 충분히 강하게 풍깁니다.
-출처: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2011), 위키피디아-
이제 12월입니다. 늘 연말마다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과거에도, 현재도 앞으로도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는 아마 없겠죠? 매년 12월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되돌아 보고, 한 해 동안 고생했던 가족, 친지, 친구, 동료 등과 크고 작은 송년회를 갖곤 합니다. 특히,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들이 이 시기에 집중됩니다. 한화케미칼도 크리스마스 및 연말연시 시즌에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수행해왔습니다.
▲ (좌) 2009년 12월 (우) 2013년 2월 한화케미칼 봉사활동 모습
왜, 유독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에 이런 활동들이 집중될까요?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크루지 사무실에 들어온 자선 기금 모금 활동가의 대사를 빌면,
“저희가 이 절기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계절보다 이때 결핍이 무엇이며 풍요가
무엇인지를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 출처: 위키피디아
이번 크리스마스,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실 건가요? 혹시 연말연시 분위기에 들떠 흥청망청 보내시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떠나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한 해 동안 고마웠던 분들께 따뜻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특히 자신의 가족들과 한 해 동안 못 다 나눈 사랑을 주고 받는 의미 있는 시간을 이번 크리스마스 때 보내는 건 어떨까요?
아울러, 우리 주위에 경제적인 또는 심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뭔가를 한 가지 정도만이라도 실행에 옮기는 것도 좋겠습니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著, 마이클 패트릭 히언 註, 윤혜준 譯,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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