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2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광장에서 '마로니에 전국 여성 백일장'이 열렸답니다. 10시에 개회식이 끝나고 제시된 글제는 <염색, 그림자, 눈동자 그리고 벌레>였는데요, 이 중에 한 가지를 정해서 시나 수필, 혹은 아동문학(동시, 동화)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된답니다.
백일장이 열리는 마로니에 공원은 문학의 열기로 가득했는데요, 주최측에서 말하길 500명 이상의 여성이 참여하였다고 하네요. 물론 저도 바로 그 500명 중 한 사람이었구요. 그늘진 벤치에 앉는 분들, 미리 준비해 간 돗자리를 펼치는 분들, 혹은 주변의 카페를 찾아 들어가는 분들도 계셨어요.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았는데요. 끊임없이 꿈을 키워온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일상의 고단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오신 분들도 보였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도 다시 꿈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어요.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온 사람들로 그렇게 마로니에 공원은 어느새 가득 차 있었답니다.
저도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동시를 한 편 쓰기로 마음먹었고, 자리를 잡고 테이블에 원고지를 펼쳤어요. 전 '염색'을 주제로 동심을 담은 글을 써 내려갔답니다.
염색
산이 염색을 한다.
봄과 여름을 지나는 동안
늘 푸르던 뒷산이
울긋불긋
새 단장에 바쁘다.
엄마, 나도 영희처럼 염색하고 싶어!
엄마가 벼락처럼 야단을 친다.
내 얼굴에 단풍들었다.
가을이다.
뒷산이 한창 염색을 한다.
길게 드리워진 산 그림자
앞 강물도 덩달아 물든다.
엄마!
뒷산과 앞 강물은 누가 야단치지요?
글. 안영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새 3시간 30분이 흘러갔는데요, 모두들 열심히 쓴 글을 접수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공연장에 모여 앉았답니다. 작품들을 심사를 하는 동안 무대에서는「다시 마로니에」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답니다. 이제니 강정 시인이 불러주는 노래, 유쾌한 힙합팀 세남자, 가사가 독특했던 비와 바, 감미로운 감성을 전해주던 무이앤미로 등 공연을 보고 있으니 가을의 낭만과 여유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 날 제가 느낀 그 기분을 간직하고 싶어서 동영상으로 남겨 보았어요. 영상이 길진 않지만, 잠시나마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실 수 있을거라 생각되요.
공연이 끝나고, 서서히 발표 순간이 다가왔는데요.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어요. 시상이 진행되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의 이름도 발표가 되었답니다. 바로 입선작에 당선되었어요. 첫 도전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아주 문학적인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어요.
너무 오랜만에 떠나보는 문학여행이었는데요, 아마 상을 받지 못했어도 이날 경험했던 그 시간들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아요. 주변에서 저에게 "다시 도전해보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수상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다시 참여할 생각이다"고 답할 거에요. 왜냐하면 전 그 시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소녀를 만났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젊은 날의 나를 만났기 때문이죠.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을까요?
올 가을엔 굳이 멀리 떠날 필요 없이, 조용한 카페나 공원 벤치에 앉아 조용히 책을 벗삼으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