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의 목마름같이 끊임없는 사람 관계 속에서 허전함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고독일 수도 있지만, 소통의 부재일 수도 있습니다. 피상적인 소통 만이 있고 깊이 있는 접촉이 없어서 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관계에 깊이 있는 소통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나 친구 등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깊이 있는 관계는 꼭 필요합니다.
이러한 대인관계 문제의 해법을 로저스의 “인간중심상담”에서 모색하고 싶습니다. 인간중심상담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투명한 소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수백개의 상담심리이론이 개발되고 있는 현재에도 많은 상담가들은 인간중심상담을 상담의 기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내담자(상담을 받는 사람)와의 긴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 인간중심상담의 방법을 차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상담의 핵심은 “공감적 이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솔직성”입니다. 인간중심상담에서는 상담자가 이러한 태도를 보일 때 내담자는 본래적으로 내재화된 잠재력을 실현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상담자의 이러한 태도는 내담자와 소통을 더욱 깊게 하여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대인관계에 대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선 “공감적 이해”를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중심상담의 임상적 적용』(Dave Mearns, Brian Thorne 저, 주은선 역, 2012)에서는 “공감은 진행적인 과정으로서 상담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경험하고 인식하는 현실을 옆으로 제쳐 두고, 내담자의 경험과 인식에 대해 느끼고 반응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태도다.”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공감은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을 상상하고 “내가 상대방이라면 어떠하였을까?”라고 느껴보는 것입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내 관점”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 공감은 반응적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에요.
저도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상대방이 급작스럽게 원론적인 조언을 하면 대개는 불편하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 깊게 들어줄 때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가 자신의 관점에서 나름대로 내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는 때때로 고맙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상대가 내 관점에서 내 입장이 되어 들어 주면 마음도 풀리면서 더욱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으며 이에 더하여 내 자신을 더 탐색할 수 있습니다.
공감은 단순한 반응적 기술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모 TV프로그램에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아, 그랬겠구나”라고 맞장구 치는 것이 어색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이유도 진정으로 상대방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앵무새처럼 반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상대의 말을 맞장구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지속적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입니다. 위 책에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을 가진 상담자는” 자신의 내담자의 인간성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내담자의 특정한 행동으로 그 가치가 편향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은 간단하게 보이지만, 존중하기 어려운 행동을 할 때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가령 친구가 이기적인 행동을 보일 때, 배우자가 자신의 사소한 잘못을 맹렬히 비난할 때 상대방을 존중하기 힘듭니다.
▲ 긍정적인 존중은 상대방의 인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서 출발해요.
그러나 저의 실수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저를 늘 따사롭게 대해주셨던 분을 떠올리면 그 분으로 인해 전 제 가치를 더 찾았을 수 있었고 그분과의 관계는 더욱 따스해졌습니다. 그 분이 여러분께는 어머니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존중 받기는 좋지만, 남을 존중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위 책에서 제안하는 다음의 방법은 솔깃해집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기 힘든 순간에는 “나는 이 사람을 아직 모른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탐색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탐색에 다음의 질문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를 생각할 때, 나는 어떤 감각을 경험하는가? 그것이 전부인가?”
“그의 장점은 무엇인가?” (각 순서대로 집중한다.)
- 이것에 집중할 때 나는 어떤 경험을 하는가? 그것이 전부인가?
“그의 단점은 무엇인가?” (각 순서대로 집중한다.)
- 이것에 집중할 때 나는 어떤 경험을 하는가? 그것이 전부인가?
“그가 나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그에게 무엇을 가장 주기를 원하는가?”
“우리의 관계에서 나는 누구인가?”
마지막으로 “솔직성”입니다. 위 책에서 솔직성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나타내는 표면상의 반응과 상담자의 내면에서 경험하는 것이 일치하는 상담자의 존재 상태”라고 합니다. 즉, 상담자가 똑똑하거나 유능하거나 배려하는 것처럼 가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저도 솔직한 사람이 편합니다. 저를 배려하는 척 하는 사람보다는 쿨하게 거절하는 친구가 당장은 야속하더라도 다음 번에는 더욱 편하게 느껴집니다.
인간중심적 상담에서 솔직성이란 훈련된 상담자가 자신의 욕구나 두려움이 상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상담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자기를 노출하는 것으로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는 “척”하는 것을 피하고 나의 감정을 명료하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정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이 놓치지 쉬운 부분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우리는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놓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식한 감정은 과다한 표출도 아니고 억압도 아닌 적절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인간중심상담의 핵심적인 조건을 짧게 훑어보았지만, 이것은 그 단순성에 비해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들은 인간중심상담이 이론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 행하기는 어려운 상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상담이 시사하는 원리를 한 가지씩 적용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제와는 다른 관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