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막바지 여름입니다. 갈수록 여름이 너무 덥고 활동하기 불편해 싫다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계절 중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가볍고 밝은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그 상기된 얼굴과 땀방울, 작열하는 태양아래 무성하게 자라나는 산과 바다의 생물들, 저녁 무렵까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자전거를 타는 동네의 풍경.
여름의 낮과 밤이 주는 생동감의 매력은 겨울의 우울한 정취와는 비교할 수 없지요.
그래도 이 불쾌한 기분만큼은 어쩔 수 없다구요? 연인과의 스킨십도 찝찝하게 느껴 질 만큼 땀이 흐르는데 무슨 생동감이냐구요? 여름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구요?? (안돼요!!)
그런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여름에 쩔어있던(?) 당신의 몸과 마음을 달래 줄 지나갈 여름과 돌아올 가을사이에 혼자빠져볼 감성영화!! 혼자 보셔도 좋고, 연인과 함께 보셔도 좋습니다.
*주의: 본 추천은 순전히 주관적인 취향이오니 이 영화들에 안 좋은 추억이 있으시거나 잔잔한 영화를 싫어하시는 분은 기대를 접어주세요 ~
참 풋풋하고 싱싱한, 그래서 땡볕 아래서도 이슬 같던 심은하씨의 매력이 가장 돋보였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정원(한석규)과 그의 사진관을 개구장이처럼 맴도는 다림(심은하)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비록 정해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이지만, 서로가 ‘혹시 이거….사랑일까?’ 하는 설레임 가득한 표정으로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다 보면 돌아보면 이렇게 소소한 일상 속에 누구나 보석같이 빛나는 순간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 그대로, 두 사람의 아름다운 추억이 남은 그 계절은 늘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더위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만으로 올 여름을 채우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바다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수영을 못하는 맥주병에 깊은 물을 무서워 하는지라… 다만 이 영화에서 보이는 바다의 끝없이 푸른 색과 그 내면의 고요함에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입니다.
그랑블루는 1988년 프랑스에서 개봉해 당시 210주 동안 상영하며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명작으로, 한국에서는 1993년에 개봉했고 역시 뜨거운 호평 속에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달 20년만에 다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개봉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바다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 자크(장 마크바)는 여전히 바다를 향한 원망의 절규나 정복의 욕망도 없이 바다를 사랑하며 한없이 바다 속을 유영합니다. 순수하게 자연을 숭배하고, 끝끝내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투명하게 보이는 듯한 장면이 이어지는데… 훈훈한 외모에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바다를 응시하는 자크의 표정은.. 캬… 여성분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자크의 명 대사라 일컬어지는 부분 한번 적어봅니다
“ 물 속 깊이 내려가면 바다는 더 이상 푸른빛이 아니야.
하늘은 기억 속에만 존재하고 오직 고요 속에 머물게 되지”
애니메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이라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쉽게 눈을 때지 못하실 거예요. ‘언령의 정원’ 최대의 강점은 바로 비 내리는 여름날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 그와 찰떡 궁합인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곡입니다. 여름의 구석구석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려고 노력했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영화입니다.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며 학교를 빼먹고 공원에서 스캐치를 하는 고등학생이 비오는 날 한 여성을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둘은 세상에 완전히 발을 들이지 못한, 아직은 미성숙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공원에서 비밀스러운 인연을 시작합니다.
‘언령’은 ‘말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에서 특히 뿌리깊게 자리잡은 전통적인 믿음입니다. 두 주인공들의 ‘말’이 지닌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과, ‘말해지지 않은 것’의 묵직한 존재감은 여름 내내 쏟아진 비의 그것처럼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기도, 모든걸 쓸어버리기도 하는 생명 그 자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이상, 잠시 잃어버린 감성과 놓친 여름의 매력을 다시 생각나게 해 줄 영화 추천이었습니다. 물론 이 밖에도 기라성 같은 작품들이 너무나 많고 많아 다 쓰자면 밤을 지새워야 할 지경이에요. 오늘 밤, 영화 한편으로 어제와는 다른 감성 만들기에 도전해 보시는 거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