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계획은 잔뜩 세워놨는데 막상 회사를 벗어날 수 없는 잔혹한 여름,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차가운 계곡을 꿈꿨지만 눈이 시리도록 많은 서류더미만 이 여름을 반겨줍니다.
올 여름,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지금 이 시간에도 사무실 책상을 친구 삼아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과 선배, 후배님들을 위해 준비한 생활 밀착형 바캉스!
바로 버스 안에서 즐기는 나만의 바캉스인데요.
버스카드 한 장이면 훌쩍 떠날 수 있는 여행! 집 앞에서 즐기는 ‘동네 다시 보기’ 여행 어떠신가요?
│ 영화 속 감성을 쫓아서: 서울 143번 버스
버스에서의 기억, 어떤 것들이 있나요?
버스 요금함에 버스 카드를 집어넣거나 피곤에 못 이겨 잠들어 종점까지 갔던 웃지 못할 기억은 저만의 추억이 아니겠죠? 정말 사소하고 많은 추억이 깃들여진 버스, 그만큼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름이기도 해요. 그런 버스 안에서 출근 시간에 쫓길 이유도, 퇴근 시간의 피곤함도 없이 그저 가볍게 여유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기분 좋은 나른함과 더불어 익숙한 듯 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함께하는 버스 여행,
언제 어느 때나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작은 일탈이기도 한데요. 대단한 준비물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냥 무언가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 그 여유 하나면 충분합니다. 거기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한다면, 마치 CF의 한 장면과 같은 멋스러움을 연출할 수 도 있답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셨나요? 첫사랑의 풋풋함과 아련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어요. 저는 특히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함께 타던 버스가 오래 기억에 남아요.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떠나는 숙제를 하는 주인공들, 그렇게 정릉에서 버스 종점인 개포동까지 버스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 보고 있으니 143번 버스가 문득 궁금해졌답니다.
143번 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강남에서 강북을 잇는 노선이라는 점이에요. 개포동과 압구정을 지나 용산과 종로, 그리고 정릉까지… 특별하지 않은 그냥 익숙한 주변 풍경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가만히 차창 밖으로 지나는 수 많은 풍경들을 버스 안에서 보고 있으면 마치 서울을 가로지르는 느낌을 갖게 해요. 아무렇지 않은 풍경들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그 순간, 순간이 신기하고 또 즐거워요. 그리고 왠지 그 시간만큼은 전람회의 앨범과 함께 시디 플레이어를 챙겨야 할 것만 같아요.
서울 143번 버스 노선 (네이버 지도)
│ 반가운 풍경들: 종로 마을버스 11번
마을버스 자주 타고 다니시나요?
저는 마을버스 타는 걸 좋아해요. 시외버스, 시내버스와는 아주 다른 매력이 있거든요. 비록 노선은 짧지만 훨씬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져요. 장난감 같이 조그만 마을 버스들은 그 모습만으로도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아마 마을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집 앞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릴 수 있다는 걸 거에요. 이는 곧 동네의 작은 구석 구석까지 돌아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해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작은 곳까지 답사를 다니는 기분, 느긋하고 편하게 내 집으로 가고 있는 그 편한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반대로 낯선 동네의 마을버스를 타고 있노라면 마치 그 동네를 탐험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 듯 합니다. 익숙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들어서는 묘한 느낌, 그런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참 신선해요. 달력 속 멋진 사진의 모습을 하다가도 집 안 한 켠에 잠들어 있는 오래된 앨범 속 사진의 모습을 하는 마을 버스 안 풍경들은 언제나 반갑지요.
이번에 올라타 본 마을버스는 종로 12번! 12번 버스는 서울의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궁금했는데요. 비록 노선은 짧지만 종로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어요. 창덕궁과 종묘공원이라는 눈에 익은 공간부터 대학로의 사잇길까지,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아주 화려한 풍경은 아니지만 바쁜 일상 생활로 놓쳤던 모습을 즐기는 건 또 색다른 즐거움이에요. 버스 밖 풍경만큼 버스 안의 풍경도 다양한데요. 버스 안 작게 적혀있는 익살스러운 낙서 같은 걸 찾아내면 웃음이 나기도 해요. 그리고 오래 된 의자 하나, 색이 벗겨진 손잡이 하나에도 그 동안 버스를 이용해온 수 많은 이용객 모두의 삶이 담겨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버스 밖 모습 모두가 관광지도에 실릴 만한 풍경은 아니지만 꾸미지 않은 그 모습이 더 마음에 들어요. 오래된 풍경에서 오는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이 꼭 마을버스를 닮은 듯 합니다.
폭염을 잊을 시원한 에어컨과 좋은 음악, 언제나 반가운 서울의 풍경들까지…,
그렇게 버스 여행을 즐기고 있으면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주위에 흩어져있던 작은 행복을 챙기는 기분이 들게 되는데요.
갑자기 훌쩍 떠나고픈 날,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의 여행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