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요? 플라스틱은 처음 당구공의 재료로 사용된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1869년 독일 하야트 형제가 ‘셀롤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플라스틱을 만들어 당구공, 영화필름 등에 사용됐지만 열에 의해 폭발하는 성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만든 것이 바로 리오 베이클랜드의 ‘베이클라이트(bakelite)’입니다.
베이클라이트는 ‘수지(Resin)’와 비슷해 ‘합성수지(Synthetic Resin)’라 불렸고, 인류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으로 기록됐습니다. 현재 우리 산업과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은 바로 베이클라이트가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이클라이트를 개발한 베이클랜드는 어릴 때부터 사진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열정 가득한 소년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을 개발하기까지, 우리가 몰랐던 플라스틱의 탄생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발명가를 꿈꾸는 소년

베이클랜드(Leo Hendrik Arthur Baekeland)는 1863년 벨기에 겐트에서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와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후 1880년 겐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해 대학원까지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겐트시에서 장학금을 받고 만 21세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24세에는 브뤼헤 대학에서 강의하며 학계에서 인정받게 됩니다.
베이클랜드는 자서전을 통해 어렸을 때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읽으며 공부했고,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과 알렉산더 벨(Alexander G. Bell)과 같은 미국 발명가와 기업가들의 업적에 많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의 일기에는 1993년 전화로 음성을 전송한다는 벨의 발표가 있던 당시, 본인은 고작 열세 살이었는데 엄청난 인상을 받았다며, 그렇게 본인만의 전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던 경험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서 사진 공정 화학 물질 연구까지

베이클랜드는 어릴 때부터 사진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밤이 되면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했고, 그 과정에서 화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화술에 대한 실험 중 질산은의 지워지지 않는 특성을 시험하기 위해 학교 친구의 얼굴에 실험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 이사회에 불려 갔지만 그는 이사회에서 질산은을 자신의 피부에 직접 바르며, 다른 화학 물질을 사용해 안전하게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발명가의 꿈을 이루다

1889년, 베이클랜드는 화학 경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받은 여행 장학금으로 미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때 뉴욕에 본사를 둔 대형 사진 회사인 E.H.T.Anthony & Co.로부터 일자리 제안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당시 과학은 미국 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과학과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과학적 시도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베이클랜드는 사진 공정 화학물질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현상 시 자연광이 필요 없는 사진 인화지 ‘벨록스(Velox)’를 발명하게 되었고, 그는 스타트업 회사 ‘네페라 케미컬 컴퍼니(Nepera Chemical Company)’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벨록스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벨록스는 가정에서 손쉽게 인화지를 사용해 사진을 현상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때문에 발명 초기에는 사진을 취미로 찍는 사진작가들이 주로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작가들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벨록스는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됩니다.
이후 베이클랜드의 회사는 1899년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에 매각됐으며, 베이클랜드는 벨록스로 과학적·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러일전쟁 발발과 새로운 연구의 시작

베이클랜드는 사진 산업을 몇 년간 떠나 있는 동안 다양한 응용과학 및 기술 문제를 연구했고, 미국의 화학자 및 화학공학자 커뮤니티 사이에서 저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토마스 에디슨이 이끄는 자문 기구인 해군 자문위원회와, 과학 아카데미에서 조직한 국립연구위원회에 모두 임명된 몇 안 되는 미국인 중 한 명이 되기도 했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셀룰로이드 플라스틱과 사진 필름 제조에 사용되던 장뇌*의 가격이 급등하게 되는데, 베이클랜드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기 위해 1905년부터 ‘페놀-포름알데히드’ 반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장뇌: 녹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수지 물질로, 셀룰로이드나 영화나 사진 필름을 만드는 데 사용
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의 탄생

베이클랜드는 1906년 카볼산, 페놀, 포름알데히드를 압력하에서 반응시킨 실험에서 열경화성 플라스틱을 발명하게 됩니다. ‘베이클라이트(Bakelite)’라고 명명한 이 물질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에서 추출한 합성수지로, 저렴하고 불연성이며 매우 부드러워 고압 하에서 영구적으로 응고되기 전에 어떤 모양으로 성형이 가능했습니다.
1869년에는 존 웨슬리 하이어트가 발명했던 ‘셀룰로이드’가 있었지만, 높은 가연성 때문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베이클라이트의 발명은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의 플라스틱은 가열된 후에도 형태를 유지하는 최초의 플라스틱이었습니다. 또한 우수한 절연 특성과 내열성을 가지고 있어 라디오, 전화기와 같은 전기 및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산업으로 확산되었습니다.
1944년 베이클랜드가 사망할 당시 베이클라이트의 세계 생산량은 약 175,000톤, 15,000개 이상의 다양한 제품에 사용됐습니다.

벨기에 계 미국인 화학자, 베이클랜드를 1924년 타임지는 ‘플라스틱의 아버지’라 칭했습니다. 에디슨, 벨과 같은 발명가를 꿈꾸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오늘날 전 분야의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개발한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베이클랜드처럼 우리는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고, 끝없는 열정으로 세상을 위한 이야기를 써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