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일이라는 역대 최고 기록을 기록한 장마가 지나간 후 비교적(?) 짧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쌀쌀한 바람이 불고 하늘은 파랗게 물들었네요. 여름에는 비가 와서 혹은 더워서 나들이 하지 못하셨을 텐데요. 햇볕을 비하면 선선한 바람이 불고, 습한 기운도 가신 이때에, 조촐한 도시락을 싸들고 나들이를 가보는 건 어떨까요?
알고보면 서울에는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반나절 동안 시원한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푸른 자연을 침구 삼을 수 있는 소중한 곳들이 꽤 있답니다. 멀리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까지 가지 않아도 힐링이 되는 숨은 장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 저와 함께 서울 속 힐링 장소로 떠나보실까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옥인동 수성동계곡행 마을버스 9번을 타세요. 서촌의 좁은 골목을 지나 10분 채 안되면 종점에 도착하지요. 이곳이 바로 인왕산 수성동계곡 입구랍니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앞에 인왕산 치마바위의 위용을 마주하게 된답니다.
▲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인왕산 치마바위
수성동계곡은 40년 가까이 시멘트 속에 감춰져 있었답니다. 1971년에 건축된 옥인아파트가 2010년에 헐리면서,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하나인 수성동계곡 그림을 토대로 복원공사를 하고, 2012년에 서울시 기념물 제 31호로 지정되었지요.
‘장동팔경첩’은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집 주위의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의 절경을 그린 진경산수화입니다.
▲ 겸재 정선이 1751년에 그린 ‘장동팔경첩’ 속의 수성동계곡/ 간송미술관 소장
그림 속 왼쪽에 계곡 사이에 놓여진 돌다리가 보이시나요? 아래 사진은 그림을 통해 복원된 현재의 수성동계곡 모습입니다.
▲ 현재의 수성동계곡
바위와 계곡물로 특히, 여름 경치가 뛰어난 명승지인 수성동계곡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옛 집터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 인왕산 수성동계곡
복잡한 서울 속에 이렇게 자연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것이 참 감사할 정도입니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 덕분에 불어난 계곡물에 발도 담글 수 있고(지금은 많이 발이 시렵겠지만요^^), 계곡 옆 정자에서 잠시 쉬다 보면 어느새 가까이 온 가을을 느낄 수 있고, 겸재 정선이 된 듯 고요한 자연 속에 동화되는 듯하지요.
▲ 인왕산 수성동계곡
도심을 내려다 보며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도 갖고 가벼운 복장으로 짧은 시간에 기분전환하기 좋은 곳! 특히나 어린 자녀가 있으신 분께는 역사와 숲의 생태도 알아가는 반나절 가족 나들이 장소로도 적극 추천합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서대문 독립공원이 나와요. 왼쪽에는 독립문, 오른쪽으로는 형무소공원이 있어 우라나라 일제시대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지요. 그럼, 형무소 공원을 뒤로 하고 도서관 건물이 있는 위쪽으로 올라가 볼까요?
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거리는 시원한 숲길이 서울 속에 숨어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안산숲길로 초대합니다. 안산이라고 하셔서 혹 경기도 안산을 생각하신 분이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안산은 서대문구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 이름이랍니다.
안산숲길은 도심을 벗어나지 않고도 깊은 숲 속을 찾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빽빽하게 들어찬 메타세쿼이아 속에서 자연스럽게 산림욕과 함께 시원한 바람을 벗삼을 수 있어요.
▲ 안산숲길 입구
▲ 메타세쿼이아 숲
인왕산과 북악산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지나 안산숲길을 걷다 보면 무악정이라는 팔각정이 나옵니다. 무악정 앞에는 갈림길이 많은데, 여기서 꼭 주변 분에게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셔야 해요. 메타세쿼이아 숲은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곳이라서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무악정을 등지고 서면 정면이 봉수대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좁은 계단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가는 길이에요.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가는 길은 좁은 오솔길인데, 숲 사이로 나무의자도 있어서 앉아서 쉴 수도 있고 간단하게 간식도 먹을 수 있어요.
▲ 메카세퀘이어 숲으로 향하는 오솔길
쭉쭉 뻗은 소나무 숲에 다다르면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도 상쾌해집니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오후 1~2시 사이에 가시면 자연으로 몸이 힐링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어요. 도심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안산숲길은 무작정 준비 없이 운동화만 준비해서 찾아도 마음속 끝까지 정화된 기분을 충분히 느끼실 수 있답니다.
서울 시내에 가깝게 위치한 백사실계곡도 주차가 쉽지 않아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녀오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서 세종문화회관 출구로 나와서 한길을 건너세요. 올레스퀘어 앞에서 1711번 버스를 타신 후 세검정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운동기구가 놓인 공간을 지나면 표지판이 보이는데 세검정 정자 쪽보다는 부암 어린이집 방면으로 가셔서 편의점 왼쪽으로 난 경사진 골목이 보이는데 이 길이 백사실계곡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랍니다.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백사실계곡은 최근에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골목 옆 계단으로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실 수가 있고, 물소리를 따라 가다 보면 문득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을 마주하게 되지요. 도심 속에 이런 곳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이 선사한 반전의 묘미를 한껏 맛보실 수 있을 거예요.
▲ 백사실계곡을 옆으로 끼고 서 있는 현통사
백사실 계곡? 이름이 특이하죠. 조선시대 이항복 선생의 별장터가 여기에 있어서, 선생의 호를 따서 이곳을 백사실계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네요.
긴 장마 덕분에 숲 속 어디를 가도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계곡물을 즐길 수가 있어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으셔도 좋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셔도 좋아요. 청명한 하늘빛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숲, 시원한 바람, 힐링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지요? 그저 울창한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자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곳이랍니다.
백사실계곡은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들이 집단 서식하고 있는 1급수 청정지역으로,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어요. 도심 속에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이 오래오래 흐를 수 있도록 다같이 아끼고 보존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랍니다.
자아~ 어떠셨나요?
올 여름 긴 장마, 무더위로 휴가를 휴가답게 즐기지 못한 분들, 그리고 선선하게 부는 가을바람과 더불어 자연을 만끽하고 싶으신 분들, 장거리 여행이 부담되고 도심에서 힐링하고 싶으신 분들~ 무거운 여행 가방 없이 늘 신던 운동화와 여유로운 마음 하나 가지고 홀가분하게 서울 속 숨겨진 자연 속으로 떠나보아요. 가슴 끝까지 차오르는 힐링은 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