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왠지 단어만 들어도 딱딱하고 졸리고 어렵게만 느껴지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클래식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대 공연장에서나 들을 수 있고, 음악을 전문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나 듣는 특별한 음악처럼 느껴지는데요. 사실 클래식은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은 유럽 주요 도시를 통해 클래식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여러분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저와 함께 클래식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도록 할까요?
음악의 수도, 수많은 음악가들의 도시 #빈
유럽 역사에 있어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빼고는 문화 예술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빈에서는 많은 음악가들이 머물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 등 그 많은 음악가들 중에서 19세기를 뒤흔들었던 두 명의 인물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바로 브람스와 바그너입니다. 두 사람이 음악에 있어서 남긴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그들의 뛰어난 작품 자체의 영향도 있었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예송 논쟁과 같은 이 둘 사이의 악파 싸움은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베토벤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바그너와 베토벤을 따르고자 했던 브람스는 엄청난 갈등을 일으켜 세웁니다. 음악가들이 브람스와 바그너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마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갈등을 그린 캡틴 아메리카3: 시빌워와 같은 모습들이 음악계에서 연출되었습니다. 바그너의 조수로 음악계에 나왔던 브람스이기 때문에 파장은 더욱 컸습니다.
▲ 바그너(출처: http://www.pri.org/)
바그너와 브람스의 갈등은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고전적인 양식을 따를 것이냐 이로부터 탈피할 것이냐에 대한 갈등입니다. 엄격한 교향곡에 형식에 대해 바그너는 교향곡의 죽음을 선언했지만, 뒤에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을 꺼내 들면서 이를 무너트립니다. 이런 형식적인 측면 외에도 기존의 음계에 대해 반발한 바그너는 그의 음악에 다양한 음향 요소를 넣습니다. 바그너의 곡은 해마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통해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대곡이자 난곡이기에 국내에서는 잘 연주되지 않지만 최근 들어 무대에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월에도 바그너의 3부작 중 하나인 로엔그린이 무대에 올라옵니다.
▲ 브람스(출처: http://www.bbc.co.uk/)
브람스의 곡은 가을, 겨울에 특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9월에 내한한 로얄필하모닉오케스트라, 11월 정명훈 지휘자와 함께 내한한 빈필하모닉오케스트라 모두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을 프로그램으로 선정했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은 칼 클라이버의 지휘를 추천합니다. 바그너의 공연은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한 앨범을 들어보셨으면 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고장 #밀라노
이탈리아 번창한 도시 중 하나인 밀라노는 우리에게는 패션의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 또한 매우 유서 깊은 곳입니다. 처음에 언급한 빈에서도 많은 음악가들이 있었지만 이탈리아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의 금자탑을 쌓은 빈과는 다르게 오페라로 유명한 작곡가들이 많습니다.
▲ 로시니(출처: https://www.operaphila.org/)
바로 푸치니와 베르디, 그리고 로시니가 있습니다. 이들의 활동 시기는 로시니 – 베르디 – 푸치니 순입니다. 로시니의 경우 베토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으며,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지만 빈 사교계에서 엄청난 명성을 떨쳤다고 합니다. 심지어 베토벤보다 로시니의 인기가 더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지금으로 말하면 나올 때마다 박스 오피스와 음원 차트 모두 1위를 차지하는 정도의 인기를 가졌다고 합니다. 대표작으로 윌리엄 텔과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있습니다. 특히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라는 곡이 매우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클래식 팬들에게 사랑받는 곡이라 연주회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곡입니다.
▲ 베르디(출처: https://www.operaphila.org/)
1813년에 태어난 베르디는 앞서 이야기한 바그너리안이라고 불릴 정도의 추종자를 가진 독일 태생의 바그너와 동시대에 활동한 작곡가입니다. 베르디 생전에 바그너와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골렛토, 아이다가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졌고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베르디의 마지막 역작 팔스타프도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작품입니다. 그 외에도 나부코,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850년대에 태어난 푸치니는 투란토트, 나비부인, 토스카 등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작품도 선배들 못지않게 사랑받아 여러 갈래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투란토트의 경우 작품 속에 나오는 노래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는 동명의 웹툰으로도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토스카의 경우에는 지난 10월 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으로 한국에서 15년 만에 무대에 올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스탈린과 쇼스타코비치 #상트페테르부르크
1. 유럽 대륙과는 다른 계통의 러시아 음악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프랑스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뛰어난 작곡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발레 음악과 교향곡 6번 비창으로 유명한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삽입곡)과 보칼리제로 잘 알려진 라흐마니노프, 봄의 제전을 작곡한 스트라빈스키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글라주노프,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샤코프 등은 러시아 국민악파로 러시아 음악만의 색을 주장하며 한 계보를 만들어내 유럽 대륙과는 다른 러시아만의 음악 철학을 남겼습니다. 러시아의 음악가들은 러시아 음악만의 색채를 만드는 데 노력했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북서쪽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중심으로 그들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는데요. 그래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까지도 러시아 음악의 중심지로 있습니다.
2. 쇼스타코비치와 스탈린
러시아 현대사에 있어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유럽 동구권의 몰락이 시작되어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러시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공산화가 된 붉은 러시아를 떠올리면 대표적인 인물은 스탈린입니다. 스탈린은 1922년 레닌에 의해 서기장으로 발탁된 이후 한국 전쟁 직후까지 소련의 1인자로 군림한 인물입니다. 스탈린은 정치 군사뿐만이 아니라 문화 예술까지 그의 휘하에 두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예술가 등 사회 각계의 인물들에게 비밀경찰을 붙였습니다. 그 외에도 프라우다라는 공산당 기관지에 평론을 내 사회적 압박을 주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그에 시달렸다고 진술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에 따르면 마찰의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냈으면 하는 스탈린과 자신의 것을 창조하려는 예술가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다만 예술가에게는 권력이 없었을 뿐입니다. 시대와 갈등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작곡에 있어서 키워드는 시대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현재, 그 시간과 장소가 그의 작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기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고 대표적인 작품은 현악 사중주, 첼로 협주곡, 교향곡 5번, 7번, 13번입니다.
3. 교향곡 5번, 7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스탈린과의 마찰 이후 작곡된 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공연 도중 스탈린이 나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5번을 작곡합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출세를 위해 스탈린에 입맛에 맞춘 곡이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후에 생존을 위해 강요된 즐거움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본인의 입장을 표합니다.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 사회적으로 낙인 찍힌, 창작의 자유가 결여된 공포감이 휩싼 사회 속에서 살고 싶었노라 이야기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내면과는 다른 페르소나가 교향곡 5번에 드러나 있습니다.
교향곡 7번의 부제는 레닌그라드입니다. 지금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지만, 스탈린 아래의 러시아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명칭은 레닌을 기리는 뜻의 레닌그라드라고 불렸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이곳에서 중요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은 이곳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봉쇄하여 항복을 받아낸 뒤 무혈입성 후 모스크바로 진격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포위에도 불구하고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약 900일을 버텨내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레닌그라드에 있었던 쇼스타코비치는 반 전쟁, 그리고 전쟁에 의해 희생되는 시민들을 생각하며 작곡을 시작합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작곡되어 헌정된 곡인 교향곡 7번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생각과는 다르게 소련의 홍보대사로 연주된 곡이지만, 곡 자체의 구성 등은 참신하며 전쟁의 광기, 이에 대한 항쟁 등이 잘 드러난 곡입니다. 두 곡은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앨범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세계대전 속 한 떨기의 희망 #영국
1.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 엘가(출처: http://www.classicfm.com/)
세계사에 있어서 세계 대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비극들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 중에도 작곡가들은 쉬지 않고 비극적인 현실과 이를 보는 슬픔 속에서 음악이라는 꽃을 피워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국 태생의 작곡가인 에드워드 엘가입니다. 영국은 대대로 음악을 사랑한 나라입니다. 유럽에서 넘어온 헨델과 스코틀랜드 교향곡, 핑갈의 동굴 등을 작곡한 멘델스존도 영국에 상당히 오래 머물렀습니다만, 이 둘은 독일 태생입니다. 즉, 영국 태생의 작곡가 중 잘 알려진 이는 엘가가 유일무이하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엘가의 곡 중에서 교과서나 BGM으로 많이 쓰여 귀에 익숙한 곡은 단언컨대 위풍당당 행진곡과 사랑의 인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엘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밝은 곡만 작곡한다는 색안경을 쓰고 엘가를 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엘가는 어두움에 대해서도 많은 곡을 작곡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교향곡 2번과 첼로 협주곡입니다.
2. 첼로 협주곡 그리고 쟈클린 뒤 프레
▲ 쟈클린 뒤 프레(출처: http://www.classicfm.com/)
엘가의 명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은 첼로 협주곡을 꼽을 것입니다. 이 곡은 1918년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인 포화 속에서 작곡되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속 비극은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곡은 보통 협주곡이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것과 다르게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악장 도입부의 무반주로 시작하는 솔리스트의 코드(두 개 이상의 음을 동시에 내는 기법)는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당시 엘가가 느끼던 감정들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곡의 진행에 따라 어둠 속에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서정성이 강한 곡입니다.
엘가 첼로 협주곡 명연 또는 명반을 꼽으라고 하면 영국이 낳은 최고의 첼리스트인 쟈클린 뒤 프레의 연주를 꼽을 것입니다. 남편 바렌보임과 녹음한 앨범과 바비롤리 경과 녹음한 음반이 있고, 두 음반 모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첼로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이 곡의 경우, 쟈클린 뒤 프레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기구한 인생 때문일 것입니다. 천재 첼리스트로 언론 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한 그녀는 탄탄대로 성공의 커리어를 쌓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도 하며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끝은 대부분 비극입니다. 바로 뒤 프레에게 1971년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이 찾아왔습니다. 근육이 굳어지고, 시력이 떨어지는 등 첼리스트로서 활동이 점차 어려워졌습니다. 공연 도중 활을 떨어트리기도 하고, 첼로 현을 운지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그녀는, 그녀의 데뷔곡이자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연주자로서 활동을 마감합니다.
클래식은 음악의 특성상 따라 부를 수도 없고, 쉽게 연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중가요처럼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클래식을 더욱더 어렵게만 느끼게 되는데요. 앞에서 소개해드린 역사 이야기 속 클래식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클래식을 접한다면 조금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다가올 것입니다. 특히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역사를 공부할 때 클래식과 함께 접근한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되실 거에요. 쉽게 접할 수 없다고 무조건 어렵게만 느끼시지 마시고 유럽의 역사를 통해 클래식을 쉽게 이해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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